[일본] 겸허, 견실을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제12화
겸허, 견실을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제12화
3학년이 되었다.
즈이란 초등부에서는 3학년과 5학년 때 반 편성이 새로 이뤄진다.
봄방학 내내 매일같이 오직 하나만을 빌었던 보람이 있어, 황제와는 무사히 다른 반이 되었다.
나는 4분의 1의 확률을 뚫어냈다.
오라버니는 중등부를 졸업하고 고등부에 입학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한층 더 바빠지신 모양인지, 예전보다 집에 계시는 시간이 줄었다.
재미없단 말이야.
유리에 님과 아이라 님도 초등부를 졸업하고 중등부생이 되었다.
중등부 교복을 입은 두 분은 어쩐지 단숨에 어른스러워지셔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몸집 차이를 실감하고 말았다.
고작 봄방학을 사이에 두고 한 달밖에 안 지났는데, 어째서일까?
이게 바로 교복 매직인가?
음~, 중등부 교복 예쁘긴 하지.
황제는 유리에 님과 교사(校舍)도 살롱도 떨어지게 되어, 기분이 여간 나쁜 게 아니다.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듯, 주위는 눈치만 살피고 있다.
그렇게 암흑 오라를 뿜어대는 황제에게 태연히 말을 걸 수 있는 건 엔조 정도다.
과연이다. 나로선 절대 못 한다.
점점 더 아름답게 성장해 가는 유리에 님을 보며, 나이 차를 실감하고 초조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어른이 됐을 때의 네 살 차이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지만, 어릴 때의 네 살 차이는 너무나 크다.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이면 연애 상대로 여겨지는 것조차 어림없는 일일 테니까.
본인도 그걸 충분히 알고 있는지, 유리에 님 곁에 남자가 다가오기라도 하면 살기를 흘리며 무언의 위협을 가한다.
정작 유리에 님 입장에서는 귀여운 남동생의 질투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으니, 이 또한 참으로 애처롭다.
가끔은 방과 후에 중등부까지 마중을 나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지나치게 갸륵하잖아, 황제.
그리고 1학년 때부터 다니던 학원에, 즈이란 학생이 몇 명 들어왔다.
즈이란은 에스컬레이터식이라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위로 올라갈 수 있으니, 공부에 관한 위기감이 별로 없다.
게다가 대부분은 학원보다 가정교사 쪽이다.
그런 와중에도 일부 남학생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우려하던 일이 마침내 닥쳐온 느낌이다.
"킷쇼인 양도 이 학원에 다니고 있었구나."
초등 3학년 코스에서 같은 반이 된 즈이란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네, 뭐."
"저기, 옆에 앉아도 될까?"
"…앉으세요."
이해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 처음 발을 들여 불안한 와중에, 낯익은 사람을 발견하면 저도 모르게 다가가고 싶어지는 그 마음.
든든하지. 마음이 놓이지.
하지만 나에겐 아주 곤란한 전개다.
"올해부터 다니기 시작한 애가 또 있긴 한데, 요일이 달라. 나 혼자인 줄 알았더니, 설마 킷쇼인 양이 있을 줄은 몰랐네. 아, 킷쇼인 양도 올해부터야?"
"아뇨, 저는 1학년 때부터예요."
"에엣, 그래?! 의외다. 킷쇼인 양이 그렇게 공부하는 타입으로는… 아니, 그게."
응, 딱히 신경 안 써도 돼.
즈이란 중에서도 특히나 아가씨 티가 폴폴 나는 그룹의 리더 격인 내가, 1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닐 만큼 공부 열심히 하는 애로는 도무지 안 보이겠지.
"오라버니의 영향으로 저도 다녀 보고 싶어졌답니다."
뭐, 이쯤이 무난한 답이겠지.
어느샌가 나에게는 브라콘이라는 딱지가 붙어 버린 모양이니까.
"헤에, 그렇구나. 그런데 여기 학원 어때? 학교 수업보다 어려워?"
"글쎄요. 입시 명문교에서 온 학생이 많으니, 나름대로 어렵긴 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구나아."
그 뒤로도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지만, 당연하다는 듯 나를 알고 있는 이 아이에게 점점 더 이제 와 물어볼 수가 없어졌다.
너 이름이 뭐야? 하고 말이다.
곤란하네.
이렇게 살갑게 말을 걸어 주는데, 이름도 모른다고 하면 상처받겠지?
뭔가 힌트가 될 만한 게 없을까…. 아, 그렇지.
"슬슬 교과서랑 문제집을 꺼내 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교과서 내용은 좀 확인하셨나요?"
"아, 그러네."
부스럭부스럭 가방에서 국어 교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어디 보자, 문제집 이름 칸에 적혀 있는 건──
“아키사와 타쿠미(秋澤匠)”군.
좋아, 외웠다.
사와인지 자와인지가 애매하긴 하지만.
"아키사와 군은 반 편성에서 몇 반이 됐어요?"
슬쩍, 나는 처음부터 당신 이름을 알고 있었답니다, 하는 어필.
"어, 킷쇼인 양, 내 이름 알고 있었어? 킷쇼인 양네 그룹은 나 같은 건 모를 줄 알았는데. 어, 난 4반이야. 그리고 내 성, 아키사와가 아니라 아키자와인데."
…이름을 모를 줄 알았으면 우선 네가 먼저 밝혀야지.
이쪽은 같은 학년인데 이름도 모르면 상처 주는 거 아닐까 하고 이래저래 고민했단 말이다.
이 아이, 좀 얼렁뚱땅한 애인가?
이윽고 수업이 시작되어 수다는 끝.
초등학교 3학년 수업 내용치고는 조금 수준이 높았지만, 지금까지는 아직 여유롭다.
옆자리의 아키사와 군 개칭 아키자와 군도 긴장한 듯했지만, 열심히 수업을 듣고 문제집을 풀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
"아아, 긴장했다! 우리 학교보다 진도가 빠르네."
아키자와 군이 기지개를 켜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왔다.
…그렇겠죠오~.
내가 두려워했던 게 바로 이거다.
즈이란 학생이 들어오면 틀림없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나에게 주목한다. 그리고 내 행동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아니면 아키자와 군처럼 말을 걸어오는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까지 첫 대면부터 프렌들리한 애가 올 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의 본래 목적, 편의점 나들이를 못 하게 되어 버린다!
아아~, 역시 이렇게 되나….
"그렇네요. 그 대신 학교 수업은 편해질 거예요."
"그렇구나아. 킷쇼인 양 성적 좋았구나. 전혀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이 아이, 역시 얼렁뚱땅한 애다. 입이 너무 헤퍼.
"저, 그렇게 불성실해 보이나요?"
콕 하고 찔러 줄 테다.
"그런 뜻이 아니라! 뭐랄까, 아득바득 공부하는 애들이랑은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할까. 킷쇼인 양 주변 애들도 그런 느낌이고. 게다가 그 피부안느고."
뭐, 하긴 그렇지.
나는 같은 학년 중에서도 집안이 센 축에 들고, 전통을 중시하는 학원에서는 옛 화족이라는 가문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기에, 내 주변에도 그런 여자아이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레 여자애들 중에서도 가장 위압감 있는 그룹이 만들어져 버렸다.
다들 친구라기보단 측근이라는 느낌인 게 조금 서글프지만.
"레이카 님"이 아니라 "레이카 짱"이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나, 그 학원에서 친구가 있긴 한 걸까….
"뭔가 의외였어! 킷쇼인 양은 다가가기 어렵고, 나 같은 건 상대도 안 해 줄 줄 알았는데, 설마 이렇게 싹싹할 줄이야."
기쁜 듯이 아키자와 군이 웃는다.
응, 역시 나는 다가가기 어려운 애구나.
"다음 주에도 옆자리에 앉아도 될까?"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이제 편의점엔 당분간 못 갈 테고.
게다가 이런 식으로 벽을 세우지 않고 말을 걸어 주는 애도 별로 없으니.
"네, 물론이죠."
아키자와 군은 내 친구가 되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