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겸허, 견실을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제4화
겸허, 견실을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제4화
"레이카 아가씨, 어서 오세요."
학원에는 킷쇼인가(家)의 운전기사님이 등하교를 맡아 주신다.
납치 같은 사고에 대비한 방범 대책도 있고, 차에 공부 도구랑 예체능 학원 준비물을 실어서,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학원으로 가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가씨의 생활이란 게 참 바쁘다.
방과 후는 거의 학원 스케줄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동네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는 달리, 학생들 집이 죄다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책가방 던져 놓고 그대로 모여 노는 건 불가능하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 다니느라 바쁘니까, 방과 후에는 그냥 "그럼 이만, 안녕히."
자, 오늘 배울 건 꽃꽂이와 피아노다.
"다녀왔습니다."
아아, 피곤해. 역시 학원 몇 개씩 겹치기로 다니는 건 힘들어.
피아노는 그럭저럭 재미있는데, 꽃꽂이가 말이지….
그건 센스를 따지는 거라서.
오늘도 어쩐지 뒤죽박죽에, 도무지 볼품없는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은 이게 완성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는지 앞으로 어떻게 꽂을 거냐고 물으셨는데, 이제 내 빈약한 예술 센스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요?
결국 선생님이 내가 곁들여 꽂은 꽃들을 "이쪽이 낫지 않을까요?" 하면서 쓱쓱 뽑아 다시 꽂으셨고, 마지막엔 내 색깔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작품이 완성되어 끝.
못난 제자라 죄송합니다, 선생님.
교복을 갈아입고 거실로 갔더니, 마침 오라버니가 막 귀가한 참이었다.
"어서 오세요, 오라버니!"
"다녀왔어, 레이카."
그렇다. 몰랐지만, 킷쇼인 레이카에게는 오라버니가 있었던 것이다.
원래 킷쇼인 레이카라는 인물은 악역으로 등장할 뿐이었으니, 주인공이나 황제처럼 가정 환경이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묘사 따위는 없었다.
약혼 관련 이야기로 부모가 잠깐 등장한 정도다.
독자들도 레이카 사정 따윈 알고 싶어 하지 않았고 말이지.
앗, 눈물이….
"오라버니, 오늘은 동아리 활동 하셨어요?"
"응, 그랬어."
오라버니 킷쇼인 타카테루(吉祥院貴輝)는 나보다 일곱 살 위인 열세 살. 현재 즈이란학원 중등부 2학년이다.
궁도부에 소속되어 일주일에 몇 번 활동한다.
이 타카테루 오라버니라는 사람이, 그 레이카의 오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온화하고 반듯한 사람이다.
"오늘은 저녁 식사 후에 가정교사 선생님이 오시죠? 그럼 저녁까지 남은 시간 동안, 제 말동무 좀 해 주시겠어요?"
나는 오라버니를 아주 좋아한다.
전생(?…이제 확정으로 쳐도 되겠지. 귀찮으니까)에서는 여동생밖에 없었던 터라, 응석 부릴 수 있는 오빠라는 존재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좋아. 무슨 얘기를 할까. 레이카는 오늘 무슨 일 있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앉아 있는 소파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기에, 나는 주인에게 달려드는 강아지처럼 잽싸게 오라버니 옆자리에 앉았답니다.
"오늘은 피아노랑 꽃꽂이 수업이 있었어요."
나는 즐거웠던 피아노와 조금 실패해 버린 꽃꽂이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오라버니가 동아리 궁도에서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았다는 얘기를 하기에,
"이 부채를 쏘아 떨어뜨려 보세요~."
하고 테이블에 있던 잡지를 부채인 양 팔랑팔랑 흔들었더니,
"나스노 요이치? 레이카는 어린데 어려운 걸 다 아는구나."
하며 조금 놀라셨다.
어라?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상식이 뭔지 잘 모르겠네.
가족이 다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오라버니는 가정교사 선생님과 함께 자기 방으로 돌아가 공부를 시작해 버렸기에, 나는 부모님과 거실로 자리를 옮겨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학교는 어떠니, 레이카."
"네, 즐거워요."
"레이카, 피부안느는 어떠니?"
"모두 멋진 분들뿐이라, 아주 많이 배우고 있어요."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짱'에서 '~씨'로 바뀌었다.
뭐, 친딸인데 그냥 이름 편하게 불러도 될 텐데 싶지만, 상류층이란 게 원래 그런 모양이다.
어머니는 교토 출신이라 즈이란을 다니지 않으셔서, 즈이란, 특히 피부안느에는 남다른 감정이 있으신 듯하다.
자기 딸이 즈이란 학생인 데다 피부안느 멤버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으신 모양이다.
피부안느 이야기를 꺼내면 지금처럼 그렇게나 기쁜 얼굴을 하신다.
"피부안느 하니 말인데, 카부라기가(家)의 마사야 군과는 친해졌니?"
"네?"
아버지가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아니요, 딱히요. 그분은 정해진 친구분들하고만 어울리시니까요."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는 대놓고 실망하셨다.
아버지, 레이카를 이용해서 카부라기가와 가까워지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구먼.
키미돌 속에서 레이카가 몇 번이나 차갑게 거절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황제를 쫓아다녔던 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한테 영향을 받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타고난 레이카의 기질도 물론 한몫했겠지만.
하지만, 아버지여! 지나친 야심은 몸을 망치는 법이라오!!
아니, 진짜로 망하게 되니까.
아버지, 일단 부정한 경영부터 그만둬 주세요.